[한국정책방송=천양자 기자] 대한민국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로 되어 있다. 헌법 제3조에 정한 ‘한반도’라는 용어가 과연 합당한 단어인가?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이 일본에 불법 병탄(倂呑)되기 이전에는 반도(半島)라는 기록이 전혀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반도’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일제(日帝)의 농간으로 우리 대륙 역사를 부정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스스로 일제가 덧씌운 ‘반도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더 큰 문제다.
우선 우리나라 국경선이 ‘압록강과 두만강’이라는 고정관념이다. 원래 이 두 강 밖으로는 소위 만주 땅이라고 하는 우리 땅 ‘간도’가 있었다. 간도(間島)는 단군조선 이전부터 피와 땀이 서려 있는 우리 영토로 역사와 문화의 뿌리가 깊게 박혀 있다. 그러다가 1907년 대한제국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원래의 간도보다 넓은 지역을 동간도·서간도로 나누며 간도 구역을 획정하였다. 이 대목에서 조선 세종 때 개척한 사군(四郡)과 육진(六鎭)의 위치도 다시 따져볼 문제다.
간도의 위치는 현재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였다. 1909년 후임 제2대 조선 통감 소네 아라스케(曾禰荒助)가 맺은 ‘청일간도협약(淸日間島協約)으로 간도는 원래 한국 영토였지만 일본이 청나라에 할양한 것이다. 간도협약은 일제가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불법 박탈한 후 청나라와 맺은 영토협약이기 때문에 원천무효다. 그리고 국경의 위치가 혼란에 빠진 가장 큰 원인은 일제가 조작한 식민반도사관(植民半島史觀)에 세뇌되어 국경이 두만강이나 압록강을 넘은 적이 없었다는 우리의 역사 인식이다.
본격적으로 대한민국의 역사 왜곡이 시작된 것은 제3대 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가 “먼저 조선 사람들이 자신의 일·역사·전통을 알지 못하게 하며, 민족혼·민족문화를 상실하게 하고 그들 조상의 무위·무능·악행을 들추어내 그것을 과장하여 조선인 후손들에게 가르쳐라.”는 교육시책에 맞춰 만들어진 『심상소학역사보충교재』에 ‘조선반도(朝鮮半島)’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 한다.
이 『심상소학역사보충교재(尋常小學歷史補充敎材)』의 <1. 상고(上古) 시대의 조선반도>의 교수요지(敎授要旨)에는 “조선반도의 연혁은 북부와 남부가 크게 다르다. 북부는 예로부터 중국의 속국(屬國) 또는 영토였다는 사실을, 남부는 곧 조선인의 조상인 한족(韓族)의 거주지로서, 이 지방은 일찍부터 일본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한다.”로 적었다.
강의요령[說話要領]에는 북부조선과 남부조선으로 구분하여 고대 일·한(日韓)의 교류를 강조해 놓았다. 북부조선을 기자조선과 위만조선 그리고 한사군(漢四郡)으로 압축시키면서, 기자조선을 “옛날에 반도의 북부를 조선이라고 불렀다. 지금으로부터 약 3천 년 전, 기자라는 사람이 중국에서 와서 조선의 왕이 되었으며, 기자는 중국에 있던 은(殷)나라의 왕족이었는데, 그 나라가 망한 후, 조선에 왔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로 날조하였다.
또한 위만조선을 “기자의 후예인 준(準) 때, 연(燕)나라의 위만이라는 사람이 조선 반도의 북부에 들어와서, 준을 몰아내어 그 나라를 빼앗았고, 위만의 손자인 우거(右渠)에 이르러, 그 나라는 한무제(漢武帝)에 의해 멸망했다.”로 해 놓아 실제로 기자조선 위만조선이 조선 반도에 있었던 것처럼 날조하였다.
한사군(漢四郡)은 “한무제가 위만조선의 우거가 자기의 명령을 위반했다고 하여, 군대를 보내 멸망시키고, 그 땅에 4군(四郡)을 설치했다. 기자 때부터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나 마찬가지 상태였지만, 이때에 이르러 완전히 중국의 영지(領地)가 되었다. 4군은 후에 2군이 되었으며, 중국의 영토였던 것은 약 420여년 동안이었다.”로 하여 실제로 반도 안에 있었던 것처럼 꾸미면서 고조선을 완전히 부정하였다.
남부조선(南部朝鮮)은 한(韓) 종족의 영역으로 강제하고 일본과 임나제국의 관계를 “주아이천황[仲哀天皇 제14대] 때 황후와 함께 군대를 이끌고 규슈에 행차하였지만, 군중(軍中)에서 죽었다. 그런데 황후는 천황의 뜻을 이어 규슈 전체를 평정하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 친히 바다를 건너 신라를 정복하고 굴복시키자, 백제와 고구려 두 나라도 사신을 보내 조공하고, 함께 속국의 예를 갖추었다.”라고 하면서 삼국을 속국으로 만들어 아예 일본 위주로 조작하였고, 임나제국과 가라국을 동일시하였다.
이런 내용으로 도배된 『심상소학역사보충교재』를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다. 이는 일본서기를 내세워 우리의 역사를 조선 반도 안으로 구겨 넣으려는 수작이요, 우리 민족을 외세 없이는 문명을 깨칠 능력이 없는 무능 민족이요, 그나마 우리나라 남부는 일본이 다스려 겨우 나라의 기틀을 유지해 나갈 수 있었다고 강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볼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일제는 고종(高宗)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환구단을 세워 천제(天祭)를 지낸 후 황제(皇帝)가 되었는데, 1910년 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제 병탄되면서 일제는 ‘조선의 왕이 감히 천제를 지내는 것은 하늘에 대한 불충이라며 천조대신의 후예인 일본 천황이 지내야 한다.’면서 1913년에 환구단을 철거하고, 1914년 환구단 자리에 조선경성철도호텔을 건립하였다.
1938년에는 환구단 터에 8층 건물인 반도호텔이 신축되었다. 철도호텔은 지금의 조선호텔이 되었고, 반도호텔은 롯데호텔 소공동점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반도호텔이고 조선호텔이었을까? 두 호텔을 합쳐 부르면 ‘반도조선’이라는 이름이다. 이는 우리도 모르게 시나브로 식민 잔재를 심기 위한 교묘한 꼼수다. 일제는 우리의 역사를 한반도 안으로 심하게 왜곡시켜 지금까지 고쳐지지 않고 있다.
1909년 간도조약으로 대륙 땅을 사기당하고 1945년 8월 15일 해방되던 날 우리는 일제에 의해 남북 분단이라는 민족적 비극을 삼켜야 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35년간 수탈해 간 일제는 다시 병참(兵站)기지 역할을 하면서 톡톡히 실리를 챙겨 당시 피폐해진 경제를 부흥시킨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는 당사국으로 회담에 참석을 강력히 희망했던 대한민국을 참석 못하게 했다. 지금도 남북한의 통일은 고사하고 화해의 협력을 방해하는 훼방꾼이 일본 같다.
우리는 역사와 주권을 계속 말하면서도‘한반도’라는 이름을 입에 달고 산다. 아무런 생각도 없고 의문도 없이 사용하는 언어는 세상을 규정한다. 역사를 문자로 기록하듯 ‘반쪽 섬’이라는 뜻이 있는 한반도(韓半島)는 일본이 만든 대한민국의 비칭(卑稱)이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일본열도의 하나로 속국이었다는 당연한 논리로 비약한다. 그래서 대륙의 역사를 창조했던 대한민국의 배달역사는 후손에서 후손으로 이어지면서 한반도에 가두어져 대륙을 누볐던 선조들의 그 기상(氣像) 마져 사라지고 만다.
심지어 친일 등 잘못된 역사를 청산하자며 미래의 역사를 걱정하는 역사학자나 관계자들까지 한반도라는 단어가 고착(固着)하고 말았으니, 일만 년 이상 역사가 깡그리 부정하는 역사 인식에 비통함이 앞선다. 어떻게 하다가 스스로 역사 왜곡하는 민족이 되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깊이 반성해 보자. 그리고 헌법 제3조의 ‘한반도’의 삭제 개정을 포함하여 압록강과 두만강을 국경으로 정했다는 ‘백두산정계비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도 어떻게 조작·왜곡되었는지 심각하게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瓦也 정유순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중앙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 한국공공정책신문 칼럼니스트 저서 <정유순의 세상걷기>, <강 따라 물 따라>(신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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