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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진송범] 고대 유럽역사에서 바라 본 로마법의 교훈

윤영순 기자 | 기사입력 2023/07/10 [14:54]

[칼럼- 진송범] 고대 유럽역사에서 바라 본 로마법의 교훈

윤영순 기자 | 입력 : 2023/07/10 [14:54]

 

 
▲ 진송범/ 한국정책방송 칼럼니스트 ⓒ한국정책방송

[한국정책방송=윤영순 기자]

〈권리를 위한 투쟁〉으로 널리 알려진 독일의 법학자인 예링(Rudolf von Jhering)은 그의 저서〈로마법의 정신〉에서 "로마는 첫째로, 무력을 통해 국가들을 통일했고 둘째로, 기독교를 통해 세계를 다스렸고 세째로, 로마법을 통해 중세의 법을 통일했다"고 적고 있다. 군사력을 통해 제국을 건설했던 로마제국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로마법은 중세법에 계승되고 현대 모든 국가의 법에도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모든 법은 로마법을 통해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로마법은 2천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성문법 국가인 유럽국가의 법사상· 법리· 법조문의 형식과 내용· 사법체계(민법과 상법 분야)에 있어 직· 간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불문법 국가인 영미법의 실무 법원에서도 로마법의 법언이나 원칙이 적용되고, 역권· 계약원칙 그리고 일부 해상법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더구나 유럽에 계수된 로마법이 일본· 대한민국· (개방 후의)중국 등 아시아와 아프리카 법체계와 법사상· 법계념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넓은 의미의 로마법이란 고대 로마인의 자랑인 12표법을 비롯한 모든 법들, 즉 고대 로마국가가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B.C. 753년 이래 동· 서로마제국이 멸망할 때(서로마: 476년. 게르만족에 의해 패망, 동로마: 1453년, 오스만투르크족에 의해 패망함)까지 전시대를 걸쳐 통용된 로마의 모든 법을 가리킨다. 특히 동로마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1세 때에 제정된 로마대법전(시민대법전: A.D. 529~533년)을 일반적으로 로마법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로마문명은 법률을 통한 문명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로마제국은 역사무대에서 사라졌지만 로마법은 중세· 근세의 유럽국가들을 통해 현대 모든 국가의 법체계의 근간이 되어 오늘에까지 계승되었기 때문이다. 로마법은 공법과 사법(私法)의 구별이 뚜렷했지만, 형법과 형사소송법 등 공법은 사법에 비해 별로 발전하지 못했고, 자유주의 시장경제 영향으로 실무 중심의 사법이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후기 전정기를 제외한 고전기가 끝날 때까지 사법(특히 민법)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고, 만민법이 적용되어 상거래에 관한 법률도 발달하게 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서양 법제사의 주요 연구대상이 로마사법(민법· 상법)인 이유는 민사소송절차인 소정양식소송과 민법분야에서 적용되는 법체계와 법이론이 정치한 내용과 논리적 형식을 갖춘 법으로 완비되었기 때문이다.

로마대법전에서는 사춘기 소년(14세)에게도 법률행위능력이 인정되고, 미성년자(25세 미만)에게는 거래를 거부(명예법)할 수 있는 후견인 제도를 둘 정도로 높은 수준의 법제화를 이룸으로써 로마인의 긍지와 자랑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현대 유류분제도와 유사한 의무분제도와 유언제도가 있었고, 시효제도· 권리능력· 착오와 강박, 무효와 취소 등의 민법총칙 분야 그리고 물권법의 공시제도· 소유권과 점유 구별 등, 채권법의 각종계약 관계· 불법행위· 부당이득· 사무관리 그리고 채권의 소멸에 관한 법리까지 유스티니아누스 대법전은 물권 공시제도와 관련당사자에 한정된 채권관계 등의 미흡한 점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현대 민법체계· 법제 그리고 법 내용의 도그마(Dogma)나 이론에 비교해도 손색없다고 할 수 있다.

2천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로마법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몇가지 사항을 정리해 보면, 첫째) 미래지향적인 법 발전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점과 법 내용에 국민의 현실생활과 시대를 적극 반영함으로써 국민들의 신뢰와 존중받는 법이 되었다는 점이다. 둘째) 현실 사회를 직시하면서도 과거법을 존중하여 계승하고 로마인들의 총의를 모아 로마법 제정의 동력으로 삼았다. 셋째) 로마법의 기저에는 정의의 관습법을 공적이며 권위있는 선언을 통해 법률로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또한 로마인 자신의 생활을 규율하는 법이었지만, 인류보편적 가치와 희망인 자유, 신의, 사유재산제도 그리고 법률적 제한을 법제화하여 생성· 발전시킴으로서 역사적 소산인 로마법의 신화를 이룩한 것이다. 이에 대한 20세기의 위대한 로마법 학자인 프리츠 슐츠(Fritz Schulz)가 로마법 원리를 "자유주의· 인도주의사상 그리고 신의칙"으로 요약하고 있음이 이를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넷째) 국가 지도층과 법률가는 물론 국민들까지도 투철한 권리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사회 지도층의 법에 대한 헌신이 있었기 때문에 법을 제정하는 과정 중에도 합리적 토론과 융합을 통해 사회 변화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지혜와 경험이 축적된 로마법을 제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공동체적 입법의 소산은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법의 내용이 명료하고 간단하면서도 준엄하였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로마법에도 중복· 일탈· 불통일의 흔적이 있고, 규법 체계를 벗어나지 못한 법형식주의에 치우친 점은 있다(그러나 이 형식주의는 후대 교회법을 통해 보완되어서 중세 법학과 근대서양 법학의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 역사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난제가 항상 엄존하듯 로마시대에도 엄연한 모순적 사회현상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순의 현안이 '법 앞에 만인은 평등'이라는 슬로건이 로마법의 재판과정 중에서도(로마는 신분사회) 신분에 따른 법적용의 불평등, 즉 상류 지배계층과 일반 평민간의 차별있는 법적용 그리고 법집행 과정상의 과다한 비용지출 문제(변호사 선임비용이나 담보금 지급)가 사회적 모순으로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재판과정의 지연과 졸속으로 인한 국민의 피해가 많았던 점도 오늘 우리의 법 현실과 다를 바가 없다. 로마시대에는 계층간의 차별이었다면, 현재 대한민국은 재력과 권력을 가진 계층과 그러하지 못한 계층간의 현격한 차별일 뿐이라서 별반 다름은 없다고 본다. 2000여년의 시공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굴레는 반복되고 있음을 어찌하겠는가.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진송범 /

법학박사

한국공공정책신문 칼럼니스트

선진사회정책연구원 연구위원

한국정책방송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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