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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정유순] 치우천왕(蚩尤天王)이야기:한국정책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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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정유순] 치우천왕(蚩尤天王)이야기

윤영순 기자 | 기사입력 2023/09/18 [15:17]

[칼럼 - 정유순] 치우천왕(蚩尤天王)이야기

윤영순 기자 | 입력 : 2023/09/18 [15:17]

 

 
▲ 정유순/ 한국정책방송 칼럼니스트 ⓒ한국정책방송

[한국정책방송=윤영순 기자]

 

장마기간이라 빗방울은 오락가락하는 중에 오랜만에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 2005년 10월 서울특별시 용산으로 이전 개관한 국립중앙박물관은 지하 1층 지상 6층으로 두 개의 건물이 하나로 연결된 듯 이어지는 전시 공간과 유물의 보관 및 연구 공간과 각종 부대시설이 모여 있다.

 

건물 내부에 자리 잡은 ‘역사의 길’에는 경천사 십층석탑과 고달사 쌍사자 석등을 보는 순간 과거의 시간으로 나도 모르게 빠져든다. 

 

방대한 공간에 수많은 유물을 보관, 전시하는 세계적 규모의 박물관이다.

용산의 옛 주한미군부대 자리에 위치한 이곳은 자연과의 조화를 소중히 여긴 선조들의 지혜를 이어받아 호수와 정원이 어우러지게 설계를 하였으며 남산과 한강이 둘러싸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장소에 자리 잡았다.

 

박물관 건물은 세 개 층 좌우로 선사·고대관, 중·근세관, 기증관, 서화관, 아시아관, 조각·공예관으로 나뉘어 15,000여 점의 유물이 전시되고 있다. 

 

우선 선사·고대관부터 관람하기로 하고 입장을 하였는데, 고조선을 비롯한 삼국시대의 유물은 없고, 통일신라와 발해 시대부터 유물이 전시되고 있었다. 과연 그 이전의 유물들은 발굴이 안 되었는지 또는 소장하고 있지만 아직 공개순서가 안 되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아쉬운 마음으로 찬란했던 우리 문화를 보여주는 만큼만 감상하며 마음의 양식을 보충한다. 

 

그리고 통일신라라고는 하지만 신라가 당나라의 외세를 끌어들여 660년에 백제가 멸망하고, 667년에는 고구려가 멸망하였으나, 30여년이 지난 698년에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이 함께 “고구려 땅을 차지하고, 부여의 전통을 계승한 나라[復高麗之舊居 有夫餘之遺俗]”대진국(大震國)을 건국하여 남·북국 시대가 열린다.

 

일반적으로 발해(渤海)라고 많이 불리고 있으나, 이는 당(唐)이 일방적으로 부른 발해군왕이라는 호칭에서 유래한다. 발해관 옆에 있는 통일신라관으로 이동하여 귀한 유물을 보다가 1975년 경북 경주의 안압지에서 발굴된 기와의 설명문을 보는 순간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이 기와의 문양은 2002년 월드컵 당시 우리 응원단인 붉은악마 깃발 문양인 ‘치우천왕’ 얼굴이 분명한데, 설명문에는 “짐승 얼굴 무늬 기와”로 표시되어 있었다. 정말 기가 막힌다. 우리의 역사수준이 이 정도 밖에 안 되나 싶어 무척 부끄러웠다. 더군다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2018년 7월 하순 경에 중국 하북성의 중화삼조당(中華三祖堂)이란 곳을 가본 적이 있다. 이곳은 중국의 조상인 헌원황제(軒轅黃帝), 염제(炎帝) 그리고 치우천황(蚩尤天皇)을 모신 곳이다. 원래 중국인들은 스스로를 ‘염제와 황제의 자손’이라는 의미의 ‘염황지손(炎黃之孫)’이라고 일컬어왔다. 

 

그리고 치우천왕은 배달조선(倍達朝鮮) 14대 자오지환웅(慈烏支桓雄)이었는데, ‘전쟁의 신’으로 불릴 만큼 전쟁에 탁월하고, 얼굴에 뿔이 달린 투구와 갑옷을 입어 상대방에서는 모습만 보고 달아날 정도였다고 한다. 고구려 옛 땅인 중국 요녕성 비쟈산[필가산(笔架山)]에 갔을 때 석문 중앙에 치우천왕상이 새겨져 있었다.

 

민족의 무신(武神) 치우천왕이 눈을 부릅뜨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모습은 오랜 동안 ‘국난을 당할 때마다 어떤 침략자에게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우리 민족의 얼굴’이었다. 이 상들은 무서운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악의 없이 호탕하게 웃는 모습을 지니고 있어 우리 민족의 근엄하고 강건하며 호탕한 기상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중국 역사책에는 ‘치우천왕과 황제헌원’이 하북성 탁록에서 수십 차례 전쟁을 치르고 이윽고 치우천왕이 황제에게 패하여 전사했다고 쓰여 있다. 그러나 우리 역사책에는 그 전투에서 전사한 것은 ‘치우비’라는 부장이었고, 치우천왕은 헌원황제를 물리치고 150세가 되도록 산동성과 하북성을 두루 통치했다고 나와 있다. 

 

치우천왕의 능은 산동성 동평군 수장현 관향성에 있는 것으로 전해지며, 춘추전국시대에는 이곳 제(濟)나라의 군신(軍神)으로 추앙되었고, 이어 진나라, 한나라 때는 주민들이 제를 지냈다. 또 사마천의 사기(史記)에는 한나라를 세운 유방(劉邦)이 전쟁에 출정하기 전에 치우에게 제를 올린 다음에 출전했다고 한다. 

 

특히 치우의 능에서 붉은 연기 같은 것이 깃발처럼 휘날리면 전쟁이 일어날 것으로 믿었다. 치우천왕은 고구려 백제 신라 세 나라 역대 왕릉에서도 군신의 모습으로 조각되어 나타난다. 

 

조선조에서도 매년 음력2월 경칩(驚蟄)과 음력9월 상강(霜降)에 지금의 서울특별시 성동구 뚝섬에서 왕이 직접 군대를 사열하거나 출병하면서 치우천왕을 상징하는 독기(纛旗, 소꼬리나 꿩 꽁지로 장식한 큰 깃발)를 세우고 독제(纛祭)를 지냈다고 한다. 그래서 한강과 중랑천에 둘러싸인 지형이 마치 섬처럼 보인다고 하여 ‘독기를 꽂은 섬’으로 독도(纛島)로 불리다가 ‘뚝도 또는 뚝섬으로 소리가 바뀌었다. 

 

그리고 대웅전이 있는 우리나라 사찰에서도 문살(殺)이나 기와 등에는 치우천왕의 문양이 꼭 새겨져 있다. 이는 대웅전(大雄殿)이 애초에 ‘부처의 자리가 아니고 환웅(桓雄) 할아버지가 모셔졌다’는 이야기가 설득력 있게 먹혀 들어간다. 그래서 대웅전 뒤에는 이를 보좌하는 삼성당이나 삼신각 또는 칠성각(당) 등 우리고유 신앙의 상징물이 의무적으로 서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대부분 치우천왕이 우리 조상인지 잘 모르고 관심조차 없다. 그러는 사이 중국은 치우천왕을 자기네 조상으로 빼앗아갔다. 우리는 끽소리 한번 못하고 이민족(異民族)들에게 조상까지 빼앗기고, 만리장성은 지도에 중국의 갈석산 아래 노룡두(老龍頭)에서 북한의 황해도까지 연장 왜곡되었다. 

 

중국이나 일본은 없는 역사도 잘 만드는데, 우리는 있는 역사도 신화로 꾸미거나 부정하는 과오를 자행하고 있다. 이는 심히 부끄러운 일이다. 

 

 

 

정유순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중앙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

저서 <정유순의 세상걷기>, 

    <우리가 버린 봄.여름.가을.겨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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